매장이 경험이 되는 순간
작년 한국에서만 3,100개가 넘는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Spotify.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그래서 제품 판매보다 브랜드 경험을 중심으로 한 기획이 더 중요해졌다 — 사람들은 제품이 아니라 발견의 재미와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찾아 움직인다 Spotify. 어느 매장도 더 이상 그냥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더 이상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 철학과 무드를 전달하는 하나의 미디어가 되었다 Spotify. 공간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공간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가, 그 공간에서 어떤 분위기를 유도하는가가 방문자와 브랜드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핵심이 됐다 Billboard.
이 전환이 흥미로운 건, 브랜드가 더 이상 제품의 품질만으로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그 제품을 둘러싼 공간 전체에 들어가는 동안의 감각, 분위기, 동선을 설계해서 사람을 설득한다. 물건을 사는 행위보다, 그 공간에 잠시 머물렀던 시간 자체가 브랜드와의 관계를 만든다.
디즈니랜드가 감추는 것
이 현상을 가장 먼저 정확하게 짚은 사람은 장 보드리야르다. 그는 디즈니랜드가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다고 말했다 Wikipedia. 디즈니랜드의 상상 세계는 진짜도 거짓도 아니라, 현실이 이미 허구라는 사실을 미리 막아주는 장치라는 것이다 Wikipedia. 우리는 디즈니랜드를 보며 “저긴 특별히 연출된 곳이고 바깥은 평범한 일상”이라고 안심한다. 그 안심이야말로 가장 정교한 장치다.
지금의 브랜드 경험 공간도 비슷한 일을 한다. 우리는 그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지금부터는 특별한 시간”이라고 스스로 구분 짓는다. 그런데 그 구분 자체가, 우리의 평범한 일상 역시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설계되고 유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려준다. 브랜드 공간 안에서 느끼는 몰입과, 일상 속 거리와 상점에서 느끼는 무심한 감각 사이에 정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브랜드 공간은 그 차이가 있다고 우리를 안심시키는 역할을 한다.
원본이 사라진 자리
보드리야르는 현실과 가상, 진짜와 가짜, 원본과 모조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현상을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Namu Wiki. 미키 마우스를 본 사람들은 이제 실제 생쥐보다 디즈니를 먼저 떠올린다 — 모방물에 대한 원본의 우위가 전도된 것이다 Namu Wiki.
브랜드 경험 공간에서도 같은 전도가 일어난다. 브랜드의 ‘진짜 정체성’이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간이 사람들 머릿속의 ‘브랜드 정체성’을 만든다. 제품이 먼저 있고 공간이 그걸 표현하는 게 아니라, 공간에서 느낀 인상이 곧 브랜드의 본질이라고 사람들은 믿게 된다. 그 공간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그 브랜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제품이 아니라 그 공간이 줬던 느낌이다.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그 원본의 표현인지, 순서가 이미 뒤바뀌어 있다.
Driving force
This we ek’s dispatch starts high above Paris, in the renovated residence of Saint-Lazare founder, Antoine Ricardou (pictured). Then: interior designer Sophie Ashby tells us why Milan never gets old, we throw back to the modernist lamp that shows its working and peruse South Korean architect Byoung Cho’s monograph about staying grounded. Putting us into gear is Gregory Scruggs.
모든 게 거대한 환상일 때
1977년 밴드 Styx는 The Grand Illusion이라는 노래를 냈다. 화려한 무대와 약속된 행복이 결국 거대한 환상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이 가사가 사회 비판이었다. 지금은 이 가사가 경험 디자인의 작업 지시서처럼 들린다. 환상을 만드는 일이 더 이상 숨겨야 할 속임수가 아니라, 당당하게 기획되고 예산이 책정되는 업무가 됐다.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환상과 현실이 적어도 구분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무대 위는 환상이고 무대 밖은 현실이었다. 지금은 그 경계 자체가 경험 설계의 일부가 됐다. “이 공간은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경험입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조차, 그 경험을 더 깊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우리가 정말 머물렀던 것
브랜드 경험 공간이 성공했다고 말할 때, 사람들이 정말 가져가는 건 무엇일까. 제품도 아니고 브랜드 로고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 공간에 머무는 동안 느꼈던 감각, 그 순간의 자신을 가져간다. 공간은 배경이 되고, 사람은 그 배경 속에서 잠시 다른 자신이 된다. 브랜드가 파는 건 더 이상 물건이 아니라, 그 환상 속에 잠시 머물렀던 시간 그 자체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index]의 무서움은, 그것이 가짜라서가 아니라 가짜라는 사실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미 알면서도 들어간다. 안다는 것이 더 이상 그 경험에서 깨어나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안다는 사실이, 그 경험을 더 즐겁게 소비하도록 돕는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깊이 머물렀던 그 공간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나. 그리고 그 설계를 알면서도, 당신은 왜 그 시간을 진짜처럼 느꼈는가.
Listen: The Grand Illusion — Styx
제목을 “디즈니랜드가 감추는 것”으로 바꾸고, 사진/인증 대신 머무는 동안의 경험과 감각, 그리고 브랜드 정체성이 공간을 통해 거꾸로 만들어지는 전도 현상에 초점을 맞췄어요. 이 방향이 맞나요?